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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 시공관 서울,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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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한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은 “흥부와 놀부”, 연주회 형식의 공연에 불과했다고 한다.

한국 오페라의 역사는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처음 공연된 ‘춘희(椿姬·라트라비아타)’로 시작된다.

1934년 일제 강점하의 조선에서 이탈리아로 성악을 공부하겠다며 배를 탄 젊은이가 있었다. 세브란스의전에서 의학을 전공했던 그의 이름은 이인선. 

숙련된 테너 음성을 목에 담아 4년만에 귀국한 그는 해방 후 ‘한국벨칸토회’를 창설해 많은 후진을 양성했으며 1948년 ‘국제오페라사’를 창단,1948년 1월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림으로서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 명동의 국립극장(당시는 시공관이 었음)에서 공연하였다. 이인선이 제르몽역을, 김자경 비올렛타역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1952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오디션에 합격한 주인공이 됐다. 1960년 54세의 이른 나이로 별세.

김자경은 1950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그녀는 1987년 일흔살의 나이로 37년 만에 다시 카네기홀에 서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또 1975년부터 80세가 된 1997년까지는 매년 한차례씩 가곡독창회를 가졌다. 그녀가 부른 가곡 곡목 수만도 총 160여곡이나 된다.

1998년 8월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열린 ‘한강사랑음악회’. 갈채 속에 등장한 그녀는 ‘별’을 부르던 중 호흡이 가빠 노래를 중단하고 힘없이 무대를 내려왔다. 

그후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그녀는 1999년 10월 급속히 상태가 악화되었고 한때 의식을 회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숙원인 ‘김자경 예술학교’의 설립을 못한 채 긴 ‘인생 오페라’의 막을 내리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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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名称:《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 시공관 서울,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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