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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崔恩喜 (190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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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24년 기자로 활동할 당시의 최은희 

한국 최초 여기자이며 최초로 전파에 목소리를 싣고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서울 상공을 난 여성

호는 추계(秋溪), 황해도 연백시에서 태어나 니혼 여자대학 3년 재학중 《조선일보》 기자가 되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과 통신 강의 2년을 수료하고, 근우회를 창설하여 선전부장을 지냈다. 

서울 보건인회 창설 회장·여권 옹호회 창립 선전부장·재건 국민운동 중앙위원·조국 수호 협의회 여성 대표 집행위원·3·1 국민회의 대표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친구로는 서양화가 나혜석 화백이 있었다. 이덕일 작가의 《여인열전》에 의하면 최은희 기자는 나혜석의 집을 방문하여 나혜석이 그림공부를 더 하려고 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썼다. 실제로 나혜석 화백은 유럽에서 그림공부를 한다.

별세하기 2년 전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조선일보사에 5000만원을 맡겨 ‘한국여기자상’을 제정하게 되었고, 모든 자료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그리고 가재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저서로는 자신의 걸어온 길을 쓴 『씨뿌리는 여인』(1957)·『근역의 방향』(1961)·『조국을 찾기까지』(1973)와 한국여성근대사를 정리한 『여성전진 70년』(1980) 등이 있다.

1904 황해도 배천에서 개화 양반인 최병규의 출생

1919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1919 3.1운동에 참가. 서대문 형무소에 24일간 구류.

1919 황해도 백천에서 만세시위 주동자로 구속,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음.

1924 니혼여자대학 3년 재학 중 이광수 추천으로 조선일보사에 ‘부인기자’로 입사, 한국 최초의 여기자가 됨. 8년동안 정치부, 사회부, 학예부, 및 학예부장 역임.

1927 부녀단체 근우회(槿友會)의 창립에 참여, 재무부장, 선전부장 등 역임.

1940 여권실천운동자클럽 회장

1946 일간지 <여성신문> 자문 역임.

1947 보건공로 민정장관상 수상.

1948 대한부인회 부회장 역임. 52년 ‘한국의 어머니날’ 제정 제안.

1957 <씨뿌리는 여인> 출간

1967 3·1운동여성참가자봉사회장 역임.

1971 이화여자대학교 언론공로상 수상.

1973 <조국을 찾기까지 : 1905-1946> 한국여성활동비화 출간.

1984 사망. 조선일보사 ‘최은희여기자상’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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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名称:《최은희崔恩喜 (190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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