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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는 한 신사가 고개를 들고 네 마디 말을 내 뿜는 장면을 묘사한다. 실크해트와 카이저수염, 연미복과 지팡이로 상징되는 개화기 신사가 ‘대한민보’의 한 글자씩을 이용해서 4행시를 짓는다. ‘대국(大局)의 간형(肝衡)’, ‘한혼(韓魂)의 단취(團聚)’, ‘민성(民聲)의 기관(機關)’, ‘보도(報道)의 이채(異彩)’로 ① 국가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고 ② 한민족의 혼을 통합하여 ③ 백성의 목소리를 모아 ④ 보도 내용을 다채롭게 한다는 뜻이다.
한국 만화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보면 10세기 무렵의 '보명십우도(普明十牛圖)'같은 불교 미술이나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같은 작품들을 만화의 원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1908년7월에 경성 일보사에서 발간한 유길준의 '노동야학독본'의 삽화를 최초의 만화로 보는 견해도 있고,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1909년작 '삽화1(揷畵1)'를 공식적인 한국 최초의 만화로 꼽기도 한다.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에서 한국 최초로 화가 이도영(李道榮)이 그린 시사만화를 ‘삽화’(揷畫)라는 이름으로 게재하였다. 인쇄를 이우승(李愚升)이 조각한 목판화로 하였기 때문에 선명도는 떨어졌다. 이것은 또한 한국 최초의 만화이기도 하다.
그 시사만화는 압제에 대한 투쟁 수단으로서 비롯하였으며, 금방 눈에 띄는 제1면 중앙에 위치하였고 《대한민보》가 폐간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당시 시사만화의 성격은 초보적이며 계몽적이었고, 그 내용은 주로 일제 침략의 야만성과 친일 매국노들을 규탄하는 내용이었고, 그밖에 계몽적인 내용이 더해졌다. 검열에 걸려 시사만화가 삭제되면 제1면 중앙을 시커멓게 먹칠을 한 채 발행하였다.
대한민보(大韓民報)》는 대한제국 말기에 대한협회에 발행한 신문이다.
대한협회는 대한자강회를 계승한 애국계몽 운동 계열의 단체이다. 대한협회가 1908년부터 월간으로 발행하던 《대한협회회보》는 1909년에 발행 중지되었고, 1909년 6월 2일에 일간 신문 《대한민보》가 창간되었다.
이 신문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후 《민보》로 제호를 바꾸어 하루 동안 발간한 뒤 8월 31일에 폐간되었다. 사장은 개화파 출신의 천도교 지도자 오세창이 맡았고, 윤효정, 정운복 등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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